주인장이 걸어온 길 #3

무려 2년동안이나 공부한답시고 혼자 밥먹으로 혼자 공부하며 혼자 일하며 고독과 싸웠지만... 무엇보다 더 힘들었던 건... 해도해도 줄어들지 않는 업무량과 스트레스..... 부정맥으로 인한 건강 악화....

급기야... 이제는 한계에 부딪혀... 결국엔 사단이 나고야 말았다.

그당시 내가 회사를 다니며 공무원 준비를 하고 있다는데 대해서 동기들은 대부분 격려해주고 응원해주는 분위기였지만, 어디 세상만사 내뜻대로만 되는 일이 있겠는가...

나를 미덥지않고 아니꼽게 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당시 나와 업무적으로 부딛힐 일이 있는 파트에 있던 과장님 한분이 계셨는데, (당시 내가 대리1호봉이었을 때였다.) 그분의 아래에 갓들어온 신입직원의 업무와 내업무가 약간은 겹쳐있었던 것.

물론 평상시의 나라면 신입직원이 하는 일을 물심양면 도와주고도 남았을테지만, 그날따라 몸의 상태도 평소와 달리 좋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즈음 그 신입직원의 행동거지가 심히 내 기분을 긁고 있던 터라,,, 사단이 나고야 말았던 것이다.

여기서 '사단'이라고 표현한 건, 절대 회사에서는 해서는 안될짓을 나도 모르게 해버렸고, 아마도 내평생 아주아주 잘못되고 후회되는 행동을 해버렸기 때문에, 내가 나자신을 평가할 때 '사단'이라는 말로 대신하고자 한다.

결국 내가 아프고 남몰래 공무원준비를 하며 2년동안 미루어왔던 퇴사를 별고민없이 과감하게 할 수 있게된 계기가 바로 이 '사단' 때문이니,,, 어찌보면 내 인생을 좌우했을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

어떤 사단이었냐 하니...

그 과장이라는 분('ㅇ과장'이라 칭하겠다.)이 하루는 나에게 오더니, 자신의 아래 신입직원이 해야될 일을 슬쩍 나에게 떠미는 것이다. 물론 그의 오더아닌 오더를 받을 당시 나의 모습은 책상과 라인을 왔다갔다하며 업무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당연히 나의 반응은 '안되는데요, 시간이 없습니다'였다. 나의 이런 반응에 'ㅇ과장'도 평상시 같으면 나의 윗 상사에게 가서 그냥 업무협조를 구하면 됬을 것을, 그날따라 그분 역시 무슨 오기가 생기셨는지, 내 옆자리에서 떠나질 않고 계속해서 나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왜 안되는데?', '그러니까 이유가 뭐냐고', '이거 니가 해야되는일 아냐?' 등등 거친 반말로 말이다.

참고로, 나는 반말을 죽기보다 더 싫어한다. 사람마다 상대방을 대하는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는 선배는 물론이고 후배들한테도 대학교때나 지금이나 반말한번 해본적이 없다.

나는 존대가 상대방에 대한 미덕이라고 믿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날따라 막말하고 반말하는 그분의 태도 역시 나를 더욱더 압박하고 있었다.

그의 압박에 나도 역시 오기가 생겼던 터라... 아니 오기라기보다는 계속해서 밀려오기만 하는 업무에 대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대며 솟아오르는 그 무언가였다라고 말하는게 맞겠다.

어찌되었든, 그 ㅇ과장의 말에 처음에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응을 했디. '저도 시간이 없어서 안되겠습니다.', '그게 왜 제일입니까', '신입직원이 할일이지 왜 제일인가요' 등등... 처음에는 나지막하던 내 목소리도 어느순간부터 격앙되어 있는 것을 느낄때쯤...

ㅇ과장의 입에서는 '야'라는 말과 함께 험한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가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너무 흥분해버린 나머지, 내책상을 쿵하고 치고 그를 밀치고 요란하게 철문을 박차고 밖으로 나가면서 옆에있던 휴지통까지 보기좋게 걷어차버리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일련의 순간이 정말 단 1초만에 일어난 것 마냥 순식간에 벌어져 버렸다.

나의 이런 행동은, 회사에서 받은 모든 스트레스, 2년전 부정맥진단을 받고 느꼈던 설움들, 그리고 2년동안 혼자 밥을 먹으며 외롭게 나자신과 싸워온 순간들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급기야 터져버리고야만 결과물이었다.

그리고 그 '사단'의 장소에는 내가 존경하는 선배들, 나를 믿고 따라주었던 후배들, 그리고 내가 좋아하던 동기들이 모두 나의 그런 모습을 목격하고 있었다. (정말이지 창피하고 죄송스러운 일이다.)

밖으로나온 나를 ㅇ과장이 급하게 따라나왔다.

나의 어깨를 잡으며 회사밖으로 나가려던 나를 끌어잡는다.

돌아보니 그도 꽤 상기된 모습이다. 나를 달래려 나온게 아니라 나와 싸우기위해 나온 심산이다.

결국 그와 나는 주먹다짐까지는 아니었더라도 서로 멱살을 잡기까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더이상 가다가는 내가 내던 그가 내던 큰일이 날것같다라는 느낌에, 멱살을 푼나는 조금은 진정된 모습으로, '제 상사분께 말씀하세요 저한테 말하시지 마시구요'라고 말한뒤, 회사 후문으로 무단 외출을 해버렸다.

혼자서 회사 주위를 몇바퀴를 돌았는지 모르겠다.

아마 3시간 정도는 회사에 들어가지않고 무한반복하며 회사주변을 맴돌았던 것 같다.

흥분은 좀 가셨지만, 한번 틀어져버린 내 멘탈은 쉽게 제자리를 찾지 못했다. 그동안 퇴사에 대한 간절함이 이제는 확신으로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그 후로도 여러가지 사건들이 나를 괴롭혔고, 그 때마다 다시 예전처럼 혼자서 스트레스받으며 그런 생활을 지속하다가.....

2007년 겨울의 문턱에 다다른 11월 어느날, 그날도 역시 나는 12시가 다되어 회사 도서관에서 나와서 집으로 돌아왔고, 조용히 잠든 와이프 옆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아 거의 2시간을 뜬눈으로 뒤척이다, 그냥 나지막히 혼잣말로 'ㅇㅇ야, 나 그냥 이제 회사 그만 둘까?'라며 독백처럼 읊조렸다.

그 순간 어찌된 일인지, 곤히 자고 있던 와이프가 부스스 일어나더니, '오빠 그렇게 힘들어? 그럼 이제 그만 고생하고 퇴사해. 퇴사하고 공부해 그럼 되잖아.'라고 말해주는 게 아닌가.

정말 고마웠다. 고마우면서 슬프면서 온갖 감정이 복합적으로 내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왔다.

이렇게 말해준 와이프를 붙잡고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이 때 내 나이 31살. 30여년 세월 중에 아마도 내가 가장많이 가장 서럽게 운날이 이날이 아니었나 싶다.

그 다음날 아침이 밝자마자, 그룹장에게 가서 퇴직의사를 밝히고,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일주일만에 회사를 나오고야 말았다.

그리고 희한하게도 근 2년동안 나를 괴롭혔던 부정맥이 (아직도 완치는 되지 않았지만), 눈깜작할 사이에 그 증상(갑자기 맥박이 빨라지고 심장이 아파오는 현상)이 사라지게 되었다.

2007년 11월17일 나의 S기업 퇴사일. 그 이후로 부터 나의 삶과 나의 가치관은 변화의 가도를 달린다.

- To be continued -